Level: Ragnarok (Novela) Capítulo 184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184화
 

 

한 폭의 동양화.

그것이 수호가 블랙마켓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느낀 첫인상이었다.

물안개가 자욱한 산맥의 깊은 계곡길.

그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자, 수호의 앞에 거대한 건축물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더니 이윽고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신전’



그랬다.

그렇게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높이 솟은 천장.

투박하지만 정교하게 장식된 돌기둥.

그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

보자마자 압도되는 이 신성한 분위기는, 이곳이 누굴 위한 곳인지는 몰라도 ‘신전’임을 본능적으로 자각하게 만들었다.

움찔.

갑자기 베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며 전방을 주시했다.

[소군주님, 저 건물 깊은 곳에서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지나이다.]

“인간? 아니면 마수?”

더듬.

수호의 물음에 베르가 더듬이를 까딱이며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마력을 가진 인간들. 아마 대부분이 헌터들인 것 같나이다.]

“악마는?”

[악마들도 느껴집니다만 많지는 않나이다. 그리고 문 바로 건너편에는 아무도 없나이다.]

“그 지부장 말대로네.”

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전 앞으로 신중히 걸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 앞에 굳게 닫힌 거대한 문을 올려다봤다.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로 열 수 없을 것 같은 육중한 문.

물론 수호의 무지막지한 근력 스탯이라면, 단순히 여는 게 아니라 한 방에 박살 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랬다간 기껏 몰래 숨어든 보람이 없지.’

이 건물 안에 할아버지가 계실지 안 계실지도 모르는 판국에 다짜고짜 소란을 일으키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수호는 이 문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짤그락.

수호는 주머니에서 민대석 지부장에게 빼앗은 ‘별가루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목걸이를 목에 건 뒤, 손을 뻗어 굳게 닫힌 문을 슬쩍 밀었다.



그그그그그그-!



그러자 놀랍게도 육중한 문이 너무도 가볍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쿠웅-!



이윽고 문이 활짝 열리자 넓은 내부가 드러났다.

바닥이나 벽면, 천정에는 군데군데 이끼가 끼어 있는 음습한 내부.

수호는 벽면에 걸려 있는 횃불들을 따라 복도 위로 발을 들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짜였네. 설마 별가루 목걸이의 진짜 용도가 블랙마켓의 통행증이었을 줄이야.”

지금 세간에는 별가루 목걸이가 만들어진 이유가 추모의 의미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른바 ‘그동안 별가루의 재료가 되어 죽어 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자’는 정말 뜻깊고 좋은 취지였다.

게다가 실제로도 별가루 목걸이의 수익금 대부분이 유가족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취지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다 연막이었다니.’

민대석 지부장의 말에 따르면, 이런 진실을 아는 헌터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애초에 블랙마켓이 생겨난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존재를 아는 이들도 극히 드물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결국 시간문제였다.

[몇몇에게만 블랙마켓에 대한 정보를 뿌려 둬도, 앞으로는 그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낼 테니까요.]

그렇게 점차 블랙마켓에 대해 알려지면, 그때는 헌터들이 알아서 별가루 목걸이를 손에 넣고자 움직일 터였다.

퀘이가 흥미롭다는 듯 얼굴을 내밀었다.

정말이지, 블랙마켓은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곳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다단계 피라미드 사업에서 볼 법한 방식이란 말이죠.]

폰지 사기(Ponzi scheme), 흔히 피라미드식 다단계라고 불리는 사기들이 이런 방식으로 피해자를 늘리곤 했다.

처음엔 소수에서 시작해서, 마치 좋은 것을 소개해 주는 양 타인을 꼬드겨 그 수를 늘려 나가는 방식.

개중에는 가끔 수상쩍을 정도로 종교색이 짙은 곳들도 많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만 없다면, 사실 수호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 종교가 이타림을 섬기는 외신교라면?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하네.’

여기가 진짜 외신교의 신전이라면, 이타림의 사도들은 이미 지구에 아주 완벽하게 적응을 끝마친 것 같았다.

잠시 복도를 따라 걸었더니, 이윽고 수호의 앞에 넓은 돔 형태의 공간이 펼쳐졌다.

올림픽 주경기장 몇 개를 합쳐 놓은 것만큼, 아니 몇 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 큰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안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한 수호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암시장이라고 생각해서 되게 어둡고 은밀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너무나 밝고 경쾌한 분위기 아닌가.



“마정석 200키로! 네고 가능합니다!”

“던전 광석 종류 별로 없는 거 빼고 다 있습니다!”

“마수 사체 오늘 떨이! 선착순 마지막 한 분께만 싸게 드립니다!”

“파격 세일! 사장이 미쳤어요!”

“돈 없으신 분은 마정석으로도 계산 가능하십니다!”

“아오! 당신 여기 초짜지? 세상 어떤 멍청이가 암시장에서 신용카드를 내밀어?!”



무슨 박람회장에 온 기분이었다.

넓은 공동을 가득 채운 수많은 돗자리와 부스들.

거기에 각자 자리를 잡고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수많은 장사꾼들.

그 광경을 보며 수호는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바자회에 온 것 같네.”

탈세를 위해 만들어진 암시장이라더니, 막상 보니까 무슨 중고 거래 장터에 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모습도 보였다.

[소군주님, 직접 광석을 제련해 주고 무기를 만들어 파는 대장간도 있는 것 같나이다.]

“그러게. 대장장이들이 주로 악마들이네.”

의외로 이곳은 인간들과 악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었다.

잠시 다녀가며 물물 거래를 하는 이들은 주로 헌터들이었지만, 아예 여기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이들은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는 악마들이었다.

말하자면 주최 측.

스태프인 것이다.

‘인간들과 악마들이 공존하는 시장이라니. 진짜 기묘하네.’

[마스터, 저기 경매장과 도박장도 보입니다.]

‘음?’

퀘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이제야 진짜 암시장다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 한 번만 더! 돈 좀 더 빌려줘! 따서 갚는다니까?!”

도박장 앞에서 전 재산을 탕진한 것 같은 헌터들이 지독한 표정으로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전신에서 마력까지 피어올리자, 도박장을 지키고 있던 까마귀 가면들이 무게 잡고 그들의 어깨를 붙잡았다.

“회원님들, 진정하시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도 퇴장 조치까진 취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 그러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빌려 달라고!”

“……후. 별수 없군요. 정 그러시면 차라리 몇 판 정도 직접 뛰시면 어떠십니까?”

“뭐, 뭐?”

“걱정 마시지요. 제가 책임지고 체급은 맞춰 드리겠습니다.”

악마들의 제안에 도박쟁이들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미련이 남는지 계속 도박장에 눈을 못 떼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하면 안 될 결정을 하고 말았다.

“지, 진짜 체급은 맞춰 줄 거지?”

“아이고, 당연한 말씀을. 잘 아시잖습니까? 지하 격투장은 원래 아이템 다 떼고, 순수 맨몸 격투라는 거. 헌터님 정도 되시는 강한 분께서 뭐가 그리 걱정이십니까?”

“……그, 그럼 혹시 선금 좀 미리 받을 수도 있나?”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수호는 보고 말았다.

까마귀 가면 너머로 길게 찢어지는 악마들의 입꼬리를.

악마들이 환하게 웃으며 호구, 아니 헌터들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무슨 당연한 말씀을. 그럼 본격적인 계약 얘기는 저쪽에서 하시지요.”

수호는 악마들을 줄줄이 따라가는 도박쟁이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하 격투장이라. 말 그대로 진짜 악마와의 계약이네.’

[소군주님, 아시겠지요?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입니다. 어? 왜 그쪽으로 가십니까?]

“지하 격투장이라잖아. 구경 정도는 괜찮잖아.”

수호가 도박장으로 걸어가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 악마들이 수호를 향해 정중히 목례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못 보던 분인 것 같은데, 혹시 다른 팩토리에서 방문하셨습니까?”

그러면서 힐끔 시선을 들어 수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는 한 쌍의 뿔을 살피는 시선에 약간의 경계심이 느껴졌다.

[너는 반말로 대답해. 볼칸의 뿔을 달고 있어서, 네가 훨씬 높은 악마라고 생각해서 조심하는 거야.]

시기적절한 에실의 조언에 수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듣고 잠시 들렀다. 문제 있나?”

그러면서 슬쩍 목에 걸린 별가루 목걸이를 들어 보여 주자, 문지기 악마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꽤 호의적인 태도로 대꾸했다.

“아이고, 문제라니요. 저희야 새로운 팩토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혹시 안내가 필요하시면 저희가 옆에서 도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묘하군.’

수호는 악마들에게서 새로운 거래처를 뚫고 싶어 하는 영업 사원의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악마들은 그 내심을 전혀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별조각을 얼마나 보유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물음과 동시에 놈들의 뱀 같은 시선이 빈손으로 이곳에 온 수호의 행색을 훑었다.

“아시다시피 요즘 빈털터리가 된 팩토리들이 워낙 많아서요.”

“…….”

수호가 잠시 말을 고르는 동안, 에실이 불쾌하다는 듯 속삭였다.

[참나. 하찮은 종자들이 감히 뿔이 있는 악마에게 이딴 말을 지껄여?]

‘아니, 왜 네가 화를 내고 그래? 내가 진짜 악마도 아닌데.’

아무래도 여긴 악마족의 서열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곳인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수호가 말이 없자, 문지기들의 입가에 그럴 줄 알았다며 노골적인 비웃음이 떠올랐다.

“아아, 이런. 역시 그러셨군요. 빈손으로 오셨을 때부터 알아봤죠. 요즘 빈털터리들이 우리 쪽에 들어오고 싶어서 찾아오는 악마들이 참 많은…… 음?”

그때였다.

분명히 빈손이었던 수호의 손에서 갑자기 한 뭉치의 별가루가 나타난 건.

“……!”

그 순간 문지기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아니, 한 뭉치가 아니었다.

두 뭉치.

세 뭉치.

네 뭉치.

수호는 그동안 악마 팩토리들을 탈탈 털면서, 그곳에 획득한 별가루들을 고스란히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걸 한 꾸러미 꺼내서 악마들에게 보여 주는 수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혹시 더 많아야 되나?”

“추, 충분합니다.”

“이,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희가 VIP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하도록.”

“옙!”

문지기 악마들은 곧장 저자세가 되어 수호를 도박장으로 안내했다.

수호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눈을 예리하게 빛냈다.

‘VIP실이라……. 악마들이 진짜 사람답게 사네.’

처음부터 악마인 척을 하길 잘했다.

할아버지가 이곳에 있는지 알려면, 아예 깊숙한 곳부터 조사하는 것이 빠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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